日記

2018 12 05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이야기할 때 나는 꼭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며 그의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제일 꼭대기에 두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카테고리를 꽉 채운다는 느낌.

그걸 말로 하고 싶을 때 결국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게 된다.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처음 알게 해 준 영화였는데 이 한 편으로 나는 이미 이 감독이 '내가 추구하는 모든 걸 보여 주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전작들을 구해 보며 더 놀라고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도, 이 사람은 진짜 그런 사람이구나 확신이 들었다. 저 아이들이 이 영화로 인해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 그럼에도 보는 이들은 모두 상처를 입고 마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마침 작업 때문에 최근에도, 아니 어젯밤에도 실은 거의 매일 보고 있다. 한 번도 도중에 울었던 적이 없고 늘 엔딩으로 가기 전 타테의 노래가 나올 때에 울곤 하는데, 얼마 전은 컵라면 용기에 심은 씨앗들이 아무렇게나 막 자라나있는 베란다 장면에서 갑자기 울게 됐다. 그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머리로 판단은 되었어도 이렇게 덜컥 무섭고 무겁게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이가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장면들이 있다.

<원더풀 라이프>의 마지막 복도 장면(올려다 본 천장의 달 뚜껑이 열리며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누는), <환상의 빛>의 마을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두 아이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무언가에 눌리고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고 그렇지만 따라가고 있다고 믿게 만들던),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건널목 장면(비행기 소리에 올려다 본 얼굴로 햇빛이 쏟아져 눈앞이 하얘진 아키라의 소매 끝을 당기며 신호가 바뀌었다는 걸 알리는 시게루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