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16 12 21

 

 

서울 떠난다니까 점점 슬퍼진다 하면서도, 여기에 뭘 두고 가는 걸까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애착하던 장소 같은 그런 것 말이다. 8년 동안의 흔적이 이 집에서만 만져지고, 그러니까 나는 서울이 아니라 이 집을 떠나는 게 슬픈 거였다는 걸 이제 알았다.

 

...

 

철운한테는 내가 이사를 좀 해 봐서 안다고 했었는데 아니었다.

철운에게 이것은 단지 이사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역사를 혼자 정리하고 대신 작별해 주는 의식 같은 일이었다.

밤마다 매일 이별하고 울적하다고 말하면서도 또 뚝딱뚝딱 하나씩, 포장이사 신청부터 가전제품 처리, 폐기물 트럭, 전세 보험까지 미리 알아 놓더니, 내가 자고 일어나면 그것들이 이미 다 해결 돼있다. 그러면서 본인 마감도 마치고 저녁에는 집회에 나가고... 하. 철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지난주엔 우리 할머니 뵙고 돌아오는 길에 너, 견딜 수 있겠어? 하고 물어봐 줘서 그것도 고마웠지. 네가 더 바쁘고 힘들면서.

 

 

오늘은 내 결혼식 사진에 할머니 얼굴 잘 나온 것 있는지 찾아 보라는 작은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신부 대기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으로 두 장 보낸 뒤 모니터에 띄워두고 한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