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11

 

 

여름방학은 늘 홍천 이모네 집이나 그 앞 강가에 텐트 치고 며칠 놀다 오는 일이 정해진 것처럼 매년 반복되어서, 개학 후에 만난 친구들이 어디를 다녀왔다고 얘기할 때면 나는 별로 말할 게 없는 기분이 들었고, 애들이 말하는 해수욕장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편평하게 펼쳐진 모래사장은 나에게 판타지 같은 세계였는데 뭐랄까... 끝이 보이지 않아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배경이 어느 한 곳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그런 장소에 있어 본 사람만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병풍 같은 풍경에 파묻힌 상태로, 집에서 챙겨온 냄비와 버너와 온갖 양념들로 요리해 먹고, 그걸 다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은 여행이 아닌 거라 믿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상상하는 여행의 이미지는 오직 친구들 이야기 속에만 있었다.

 

 

엄마 아빠가 귀촌을 선언했을 때, 나는 그 계획에 내 책임도 조금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직은 도시에 더 있고 싶었을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당시 아빠와 나 사이의 갑갑한 공기로부터 해방된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러웠다가, 우리가 매년 가던 바로 그 강가에 집을 지을 거라는 말에서 그만 무릎 꿇고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어요.

이제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나는 내가 매우 달라졌다는 걸 모두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때의 나를 더 익숙하게 여기는 이들을 만나거나 그런 장소에 가면 다시 또, 끝이 안 보이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달라진 나를 현실로 끌어오느라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점점 더 모르겠는 상태에 놓이고, 아 이제 진짜 한계다 그냥 될 대로 되던가... 하는 순간, 어쩌면 진짜 내 모습은 바로 그 순간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마음속에 미움이 사라진 걸 느끼는 순간도 있다는 것. 다른 노력 없이 미움 하나가 사라진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