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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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2

 

꿈.

옷장문을 열자 옷이 걸리지 않은 옷걸이가 혼자 계속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두고 마루로 나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가 있나 한 번 보고는 닫으려는데 자석이 서로 붙지 않고 도로 슥 열렸다. 다시 닫으려고 해도 또 열리고 몇 번을 반복하다 그냥 열어 둔 채 작업방으로 갔다.

 

 

 

 

이번에는 입구에 이젤이 놓여 있고 거기 올려진 화판이 점점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얼른 잡아 세웠더니 손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또 고꾸라지고 또 세우고 다시 고꾸라지고, 계속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깼다.

2020 11 05

 

Hold on, there's nothing to pack
Lay your heart out, we're not coming back
We're not coming back

 

추워지면 꼭 생각나는 목소리

2020 10 25

 

이번 장마 때 어머니 집에서 밥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저도 국민학교 때 저렇게 집이 잠겨서 저랑 오빠는 할머니 댁에 가 있고 엄마 아빠는 남아서 물 푸고 그랬어요 했더니 어머니가 놀라신 듯 다시 물으셨다. 네가 어릴 때 집에 물이 찬 적이 있어?

네. 끝까지 잠긴 건 아니고 마당부터 해서 무릎까지 찼어요.

어머니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으시니까 약간 흥분이 되어서, 이런 것도 겪었다구요 하는 마음으로 말했는데 거기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왜 더 묻지 않으셨을까.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집에 온 엄마 아빠와 뉴스를 보다 또 말이 나왔다. 나 국민학교 때 우리 집 저렇게 물 찼었잖아. 그러자 엄마가, 맞아 어유 그때 부엌까지 찼었어 화장실도 어으, 라고 했고 화장실,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빠가 엄마 무릎을 툭 건드렸다. 그만하라는 신호인 게 티 났다. 나는 그날 어머니 집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 얘기를 계속 더 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 집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 얘기를 싫어하고 그 집을 창피하게 여기며 자랐을 거라는 아빠의 착각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아빠는 모르고 철운은 안다.

내가 그 시절 얘기를 철운과 농담처럼 종종 개그 소재로도 사용하고 있는 걸 아빠가 알고 있고 우리가 그런 사이였다면, 아마 화장실, 거기에서 엄마의 무릎을 치는 일은 없었을 거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그 장마와 그 집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을 거고. 새벽 세 시에 아무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오래전부터 모든 걸 다 얘기했더라면.

 

 

밖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내가 나인 걸 설명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니까. 

그런데 도무지 이 가족 안에서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2020 09 17

매일 새로운 걸 보고 읽고 그러고 있지만 뭘 하다가도 문득 떠올라 그날 기분 상태를 사로잡는 것은 너무나 한결같다.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 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 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튀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즐거운가, 과장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트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오후 4시의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