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3 12 31

 

 

어제는 두희 언니 만나러 성남에 갔다.

7월에 결혼 선물로 주려고 조이를 그렸는데 이런저런 게으른 사정으로 올해가 가기 하루 전에 그것도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드디어, 언니에게 전달하기 위해 갔다. 위례 신도시는 완전히 처음 와 보는 곳이고 아마 다른 날이었다면 제법 긴장을 했을 텐데 눈이 계속 내리고 주위가 온통 하얗게 덮여서인지 이 도시를 언젠가 걸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맵을 한 번 훑어보고 자신 있게 감으로 움직이다가 전혀 다른 엉뚱한 골목에 서 있는 현재 위치를 확인하면서도 눈이 오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인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뒤돌아서 아까 빠져나온 출구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들어섰다고 생각한 골목에서 맵 상으로는 분명 오른쪽에 카페가 있어야 하는데? 저기 멀리 왼쪽에서 언니가 나를 불렀다. "미옥아!"

 

 

 

 

 

가만히 집에 앉아 있을 때 문득 언니가 생각나서 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반드시 언니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그 소리에 마음이 묘하게 달래지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 내 머릿속 어느 곳에 있는 그 소리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는 또렷한 실제를 들으니 정말이지 더 좋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내가 가지고 온 게 뭘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언니는 포장을 여는 순간 놀라며 눈물을 보였다.

언니가 좋아해 줘서 정말 기뻤어. 그러나 내가 언니에게 받은 것들에 비하면 이것은 너무 작아서 아직 더 주고 싶은 것이 많고... 그러니 계속 나를 만나주세요... 언젠가 아마도 60대쯤에 제주에서 이웃으로 보자.

 

아이들 점심 차려주고 달려온 상미도 합류해서 오랜만에 이십 대 시절 한창 놀던 조합이 되었다.

항상 차가 있는 언니가 우리를 싣고 어디든 데려가 주었던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멀리, 자주 외출하며 바람을 쐬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딘가 달라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돌아가는 기차를 놓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만 여전히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하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고 그 소리를 머릿속에 다시 담아 오면 나는 언제든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언젠가 친구와 통화하시는 어머니의 핸드폰 너머로 "재희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 이름이 내게는 조금 낯설었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이름이고 어머니는 재희야 하고 자기를 부르는 친구의 이름을 또 부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때와 오늘을 생각하다가...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그 소리들을 상상했다. 

 

 

 

 

오늘은 건너가 만두를 빚었다.

어머니가 반죽을 하고 그것을 똑 똑 잘라서 옆으로 넘기면 아버지가 밀대로 동그랗게 밀어서 쟁반에 하나씩 던져 주고 피를 받은 철운과 내가 소를 넣고 최종적으로 빚었는데 이 과정의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1차로 솥에 찐 만두가 모조리 터져 버렸다. 철운하고 내가 잘못 빚은 거겠지...

 

저녁에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막내 작은 아빠의 소식을 묻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 안 좋다가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마지막엔 홈쇼핑으로 웬만해서는 뭘 사지 말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끊었다.

 

철운은 어제 먹은 상한 찌개에 단단히 배탈이 났고 거기에다 내 pms까지 가져가서 두통이 있고 심장은 요즘 내내 쭉 안 좋아서, 오늘 하루 종일 힘들게 보냈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어서 더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올해의 마지막 밤...

 


 

열두 시가 되자, 위층에 놀러 온 꼬마 손님들이 해피 뉴 이어! 하고 크게 외쳤고 시청에서는 폭죽을 쏘아 올렸다. 내가 낸 세금이 팡팡 터졌다. 어머니 아버지도 보셨을까?

그런데 우리는 새해가 정말 기쁜 걸까? 지구에게 우리는 그저 불필요한 해충일 뿐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