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에서 나온 폐기물이 한 트럭 가득 넘쳤고 어쩌면 중요한 것도 실수로 따라 들어갔을지 모르겠다.

철운한테는 내가 이사를 해 봐서 좀 안다고 말했었는데, 아니었어. 역시 여길 떠난다는 건.. 가족 모두 살던 이 집의 역사를 혼자 대표로 끝내는 것. 매일 작별하는 마음으로 가족들 물건을 대신 정리하는 것.

이번에 철운이 보면서 많이 놀랐다. 밤마다 울적하다고 하면서도 매일 뚝딱 하나씩, 포장이사 신청부터 가전제품 처리 폐기물 트럭 무슨 전세 보험이라는 것까지 미리 알아 놓고. 내가 자고 일어나면 그런 게 벌써 다 해결 돼있다. 그리고 본인 마감도 하고 저녁엔 집회도 나간다. 미안하고 참 대단하다..

 

지난주엔 할머니 뵙고 돌아오는 길에 너, 견딜 수 있겠어? 하고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

오늘은 내 결혼식 사진에 할머니 얼굴 잘 나온 것 있는지 찾아 보라는 전화를 받았고

신부 대기실에서 찍었던 내 옆에 앉아 계신 사진으로 두 장 보낸 뒤 오랜만에 한참 바라봤다.
그날 환하고 예쁜 한복 입으셔서 사진도 잘 나왔어.

 

이상적이고 완벽한 만남. 관계.

그런 것에 질리고 있단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

떠오를 때마다 불편하고 싫었던 적이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어떻게 갑자기 좋아지게 됐을까.
오해가 풀려서,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아니면 그런 감각이 이제 없거나 둔해져서.

정말 잘 모르겠고 아마 계속 모르겠지만...

정해놓은 선과 규칙이 너무 드러나는 사람이 되기 싫고
그런 질문과 답은 그냥 나만 알면 된다는 생각도 점점 더.

서울 떠난다고 하니까 점점 슬퍼진다 하면서도 막상 서울에 뭘 남겼나 생각해 보면 뭐가 잘 없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친구들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 말고 여기에 남기는 것들 애착하던 장소 같은 그런 게 떠오르지 않는다. 8년 동안의 흔적이 이 집에서만 만져지고, 그러니까 서울이 아니라 이 집을 떠나는 게 슬프다는 걸 이제 알았다.

 

그래도 나는 이사 경험이 세 번은 있어서 가면 또 적응을 할 텐데

삼십 년 넘게 이 집에만 붙어 있던 사람은 이제 얼마나 밤마다 울고 싶어질까.

나보다 더 움직이지 않는 사람.

우리 인생 여러모로 달라질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글에 그림 그릴 수 있어 정말 기쁜 한 해였습니다.
미진 작가님과 빵이사님, 으뜸 디자이너님, 그리고 철운, 모두 고맙습니다!

매년 구경하러 가던 언리밋에 올해는 참가자로 앉게 되었다.

자기가 있으면 왠지 안 팔릴 것 같다고 걱정하던 철운과 그것보다 훨씬 더 불안했던 나.

바로 앞에서 누군가 이 책을 펼쳤다가 일 초만에 다시 닫는 걸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내 평가받는 기분으로 있었는데, 이제야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고 생각한다. 바보.

 

내게 첫 그림책이고, 이렇게 긴 시간 작업한 결과물도 처음이라서. 정말이지 만감이 서리는 요즘이다.

여러 고마움에 관한 건 절대 잊지 말아야지, 또 하나 약속하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