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3 12 04

 

 

주말에 할머님+할아버님 제사여서 아침에 건너가 전 부쳤다.

감기 기운 있으신 어머니가 모든 음식을 다 준비하시고 오직 전만 우리 몫으로 남은 건데, 와서 보니 벌써 다 부친 고구마전, 대구전이 소쿠리에 쌓여 있었고, 이제 우리가 할 것은 굴전과 동그랑땡, 대망의 피날레가 될 메밀전이다. 다 되어 있는 재료로 돌처럼 앉아서 부치기만 하면 되는...


한 번도 그런 말씀 안 하시던 아버지가 이번에 처음으로 "좀 일찍 오지" 라고 하셨다.

아니야 아빠! 엄마가 아홉시에서 아홉시 반 사이에 넘어오라 그랬는데 더 일찍 온 거야! 억울해 하는 철운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 뜻이 아니잖아... 엄마 감기 걸린 거 알면서... 그 말씀이잖아...

10년 전에 혼인신고 늦었다고 혼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공동 책임에 대해 한 소리 들은 것이.

계란 물에서 굴을 건지려는데 숟가락 끝이 미세하게 계속 떨렸다. 철운이 굴전 몇 개 덜어가 아버지 가져다드리고 와서 "아빠가 맛있대" 라고 했고 그 말 듣자 거짓말처럼 진정이 됐다.


필요한 장비 더 없는지 보러 오신 어머니가 요새 하던 일은 다 끝냈냐고 물으셨다.

어제 다 끝냈다고 했더니, 어유 그럼 쉬어야 되는데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한숨을 후욱 쉬셨다. 어머니가 다 하셨으면서도 매년 내게 미안한 얼굴로 말씀하시니까, 해마다 죄송함이 더 깊이 푹푹 파이는...

그런 마음이다가도

네 시간째 쪼그려 앉아 기름에 쩔어 있으면 허리도 나가고 정신줄도 놓게 되고... 뒤집다 찢어진 메밀전에 원한이 생기다가 아무 상관 없는 모르는 사람도 미워져서, 왜 저렇게 웃지?? 팔자 좋다?? 놀러 다니고?

내가 겨우 이 정도인 걸 매년 확인하는 시간...


메밀전 끝내고 집에 와서 씻고 두 시간 정도 쉬고

제사 지내러 다시 건너감.


올해는 고모님들이 오셨다.

자주 뵙지 못하는 어른들이라 어려우면서도 호기심에 계속 엿듣는 기분으로... 철운의 할아버지가 전쟁 때 여덟 살이던 아버지와 고모들을 솜이불에 둘둘 말아 (총알의 구심력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호하면서 정작 자신은 장독에 숨으려다 몸이 반만 들어간 채로 들켜 버린 이야기부터... 소 팔아 대학 보내 주신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보는 막내 고모에게 우리 집엔 소가 없었고 너는 옥수수 팔아서 대학 보냈다고 정정하신 큰 고모... 우리 아버지는 참 깨어 계신 분이었어 그 시절에 여자는 절을 안 했는데 아버지는 우리도 꼭 시키셨지 하시던 둘째 고모...

당신들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철운의 반골 기질이 어디서 온 건지 아버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지만 또 한 번 눈앞에서 거족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모님들의 신랄한 정권 비판 현장이 믿기 어려워 입을 닫지도 못하고 침 흘리며 끄덕끄덕 듣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머니가, 미옥이 피곤하겠다, 얼른 건너가라고 하셨다. 정말이지 너무나 재밌었지만... 자꾸 잠이 쏟아지던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겉옷 챙겨 입고 돌아갈 채비하는데 둘째 고모께서 며느리가 예술가같이 생겼어라고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쟤도 작가야!라고 하셨다. 나누시는 말이 귀여워서 웃었다가... 갑자기 고마워졌고... 코가 찡했다. ? 왜지? 어느 부분이 찡하게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