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16 08 10

 

오늘 읽은 <몸의 일기>

 

 

   입을 꾹 다문 채 저녁을 먹고 난 브뤼노가 말 한마디 없이 자러 간다. 그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이런 상황이 자주 되풀이되고 있다. 바야흐로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사춘기 소년은 어떻게든 말하는 고역을 피하게 해줄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 있는 침묵에 빠져든다. 그럴 때 얼굴은 영혼의 X레이 사진이 된다. 오호라, 그런데 얼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무표정에 아버지는 과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죽은 사람 얼굴 같은 표정을 마주해야 할 만큼 아들에게 잘못한 게 뭐지? 풀지 못할 수수께끼 때문에 유치해진 아버지는 자문한다. 그러고는 외칠 것이다. 이건 부당해!

   브뤼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쿨레체프(쿨레초프던가? 아무튼 러시아의 영화감독)의 단편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선 남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클로즈업하여 찍은 화면이 다른 화면들과 차례로 교차된다. 음식이 가든 담긴 접시, 관 속에 누운 죽은 여자아이, 소파에 누워 있는 여인. 남자의 얼굴엔 아무 표정도 없지만, 그의 모습이 접시와 겹칠 땐 그 얼굴이 배고픔을 표현하는 것 같고, 죽은 여자아이와 겹칠 땐 절망을 표현하는 것 같고, 누워 있는 여인과 겹칠 땐 열렬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같이 보인다. 얼굴은 계속 똑같이 아무 표정도 없는데 말이다.

   말해 봐, 아들아. 말을 해보라고. 날 믿어. 네 마음을 표현하는 덴 그래도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