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3 06 26

 

 

 

 

놀러 간 친구 집에 소파가 있고 식탁이 있으면 얘는 부자구나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나서 우리도 거실 있는 집이 생기고 소파가 있고 식탁에서 밥을 먹게 됐는데 왜 부자 같은 기분이 안 드나... 문제는 품질이고 그것은 결국 돈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하는 걸 즐기던 이십 대도 지나서, 그때보다 좀 더 좋은 품질의 소파도 살 수 있고 아무튼 옛날의 나보다는 형편이 좋다고 할 수 있어도 아직도 부자가 뭔지를 모르겠다 하는 삼십 대도 지나고서야, 완전히 알아 버렸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었더라면... 아빠 엄마가 개나 고양이를 너무 예뻐하고 좋아해서 말이다. 그래서 마당에 잠시 키우다 어디에 보내서 죽게 하지 않고 이름도 잘 지어서 같이 오래오래 지내다가 눈 감을 때 모두 마음 아파하고 잘 묻어 주는 그런 풍경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았다. 그럼 친구네 집 소파나 식탁 같은 걸 부러워할 시간도 없이 얼른 집에 가서 개를 만지고 고양이 빗질을 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 바라는 게 아주아주 단순하고 사랑스러운 마음뿐인 그런 이 기분을 그때도 느끼며 자랐을 것 같다고.

 

 

 

 

 

 

 

 

 

스케치 하려고 노트를 폈는데 문득 이틀 전 엄마와 통화한 것이 생각났다.

아직 호박을 따는 시기는 아니라서 밭에는 아빠만 나가고 나는 마당에 물을 주고 그러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이것도 재미가 없어,라고 하는 엄마 말이 그때는 그냥 하는 소리로 들려서, 그럼 어떡해 다시 도시로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웃어넘긴 게 갑자기 마음에 걸린다.

정말 그냥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주 그냥은 아니고 약간은 고백 같은 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거였다면 내가 너무 얘기 할 틈을 안 주고 끊은 건 아닌가 해서.

 

 

이렇게 조금의 틈만 생겨도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고 우리가 제대로 풀지 못한 과거를 생각하는데, 그러면서도 막상 마주할 때면 정작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그냥, 나도 늙고 있나 봐, 갑자기 이십 년을 뛰어넘은 너무나 간단한 말로 웃어넘기고는 다음 날 또 다음 날까지 계속 마음에 걸려 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하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는 뭘까

그냥... 내게 고양이라는 세계가 생긴 것처럼 두 사람, 특히 엄마에게도 뭔가 마음을 꽉 채우는 굉장한 사건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도 '그때 이것이 있었더라면...' 하고 상상해 보는 시간이 생긴다면... 그 풍경 속에 나와 오빠가, 아니면 아빠가, 아니면 외할머니와 이모들과 외삼촌, 또 내가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그것도 궁금하다.

나와 오빠가 아예 없을 수도 있고 그럼 나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로 엄마를 축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미 세상에 있는 상태이므로 그냥 이렇게라도... 마음이 꽉 찬 그 풍경을 같이 상상해 보는 것으로 조금은 미안함이 덜어지지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