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1
산동네 딸기원이 내겐 유년의 동화 같은 기억인데, 다른 식구들에게는 집주인 눈치 보며 살던 시절이기도 했다는 걸 조금 커서 들었을 때, 그제야 가난이란 게 그 속에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숙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됐다.
증조할아버지 모시는 대가로 드디어 사글셋방에서 벗어나 버젓한 집이 생겼어도, 여전히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화장실 앞에서 주저하고, 마루에 내 침대가 있는 걸 신기해하고, 그 침대만큼이 내 방이라는 것에 문화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놀라워하고… 그렇지만 나는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다 부모님이 해주셔서 부족함이 뭔지 잘 몰랐는데도 누군가 이 환경을 낯설어하면 그럼 이게 가난한 모습인 건가 봐.라는 생각으로 또 사춘기를 보냈다.
아빠가 받을 임금을 ‘구경하는 집’ 201호로 받게 되면서, 고 2 때 처음으로 집 안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고 모두 각자의 방을 갖는 깨끗한 빌라 시스템을 경험하고 보니, 친구들이 우리 집 화장실을 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하게 됐다.
그런 생각과 질문을 끌어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걸 잃고 잊었나 한 번쯤 돌아보는 시기가 매번 찾아오는데, 오늘 같은 날은 아주 멀리, 딸기원 산꼭대기 집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가난한 크리스마스 날 밤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건, 가난 속에 있어도 동화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가난을 들키는 기분으로 살지 않는 사회이고 아동급식카드 결제 방식이나 디자인 바꾸는 작은 행정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는지 계속 더 경험하고 싶은 거다.
sns 세계와 현실 세상은 여전히 실질적 괴리가 있고, 진짜 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삶을 사는 것과 가난을 탐구하는 이들이 가난을 챙기는 일에도 괴리는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가난에 대해 고민하는 노력이 결국 모든 차별에 맞서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