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4 02 04


꿈에서 깨자마자 홍천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꿈 얘기를 아침에 꺼내면 안 좋은 일은 그대로 일어나고 좋은 일은 물거품 된단 얘기를 언젠가 들은 뒤부터 기분 나쁜 꿈을 꾸면 오후가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 먹을 때가 돼서야 철운한테 말했다.
 
 
일단 내가 아직 구리에 살고 있어. 집에 가는 길인데 누가 뒤에서 계속 쫓아와. 꿈인데도 심장이 막 멋대로 뛰는 게 느껴져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거야. 얼른 엄마한테 전화 걸었지. 여기까지 들은 철운이 바로 끼어들었다. 어? 그거 너 진짜로 있었던 일이잖아?! 그래. 맞아. 그때랑 같은 배경인데 그땐 밤이었고 꿈에선 낮이야. 아무튼. 그래서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내 얘기 듣고는 이러는 거야. 아... 몰라 지금... 모르겠어... 너는... 네가 알아서... 나 지금 경찰서야. 뭐?? 경찰서??? 왜??? 그랬더니 엄마가 또, 아 몰라... 그냥. 누굴 찔렀어... 내가 놀라서 계속 물어도 그냥, 몰라... 이러기만 하는데 진짜 속이 터지고 너무 화나서 막 땅을 발로 쾅쾅 치면서 소리 질렀지. 뭐라는 거야 지금!!! 제대로 설명을 해 쫌!!! 왜 죽인 건데!!! 어쩌다 그런 건데!!!!! 말을 해!!! 쪼옴!!!!!! 그러다 깬 거지.
 
 
철운이 장모님한테 빨리 전화해 보라고 했다.
 
 
엄마 뭐 별일 없지? 아니 꿈 꿨는데 아침에 말하면 재수없대서 지금 전화했지. 그러자 엄마가, 너는 그런 미신을 잘 믿더라? 하고 말했다. 아니 뭐 그냥. 찝찝하잖아. 아무튼. 우리가 아직 구리에 살고 있어. 내가 집으로 가고 있는데 누가 계속 쫓아오는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여기까지 들은 엄마가 말했다. 옛날 그 일이잖아? 응. 맞아. 그땐 밤이었고 꿈에서는 낮이야. 암튼 그래서......
 
 
다행히 홍천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시간을 좀 더 보내기 위해 우리는 할 말을 계속 생각해냈다. 엄마가 고양이 모래를 강이나 그런 데서 퍼다 쓰면 안 되는 건가 하길래, 그게 살균이 안 돼 있으니까 안 될걸? 대답한 다음, 작은 아빠 연락은 아직도 없는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어 없어. 저번과 같은 대답을 듣고 이제는 그만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욕망만이 존재하고, 제대로 마주 앉아 서로를 궁금해하며 이야기 나눈 시간은 없다면... 너무 다 헛된 거 아닌가...

그럼 구정 잘 보내 엄마. 어 너도. 전화를 끊고 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날 나는 무사히 집에 왔다. 하루를 고되게 보낸 엄마는 잠에서 깨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제 그 일을 잊어도 되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엄마가 나와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내 인생이 볼품없고 하찮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 상태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동안 입을 다물고 지냈다.

 

 

나는 엄마가 그 일을 잊은 줄 알았는데. 어떤 기회라고 해야 할지 시기라고 해야 할지... 모두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엄마도 기억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것으로 되었다.

어쩌면 꿈에서 온몸으로 소리친 말은 그때 나를 향해 엄마가 외치던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시 꿈에서 했던 것처럼 속으로 외쳐보았다. 제대로 말을 해!!! 쪼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디 작은 아빠가 누구에게든 연락을 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