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03
중학교 때 만나 일 이년 동안 친하게 지내다 자연스럽게 소원해진, 그러나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만나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와 책상에 있는 내 씨디와 테이프를 집어 앞뒤로 빠르게 훑고는 이런 걸 들어? 하면서 손을 놓치거나 미끄러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책상 위에 툭 던지듯이 놓는 걸 본 뒤로 걔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다가, 엄마가 사과였나?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너 집에 가" 하고 말했다. 그 애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내게 너는 이런 책을 좀 읽어 봐야 한다고 말해준 친구도 있었다. 그 애는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 말을 하기도 했다. 옆에서 늘 조언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라고.
그러나 나는 속 좁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자의식에 빠진 소설 따위 읽지 않을 거야 대신 그림만으로 더 많은 걸 보여 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속으로만.
가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일부러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 그 말을 꼬아 듣지 않고 한 번은 읽어 보고, 재밌더라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었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런 걸 듣냐고 물으면, 응 요즘 그런 거 듣고 있어라고 빠르게 대답한 다음, 근데 내거를 왜 던지냐며 바로 투덜대기도 하고... 그러면 그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래서 지금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고... 어쩌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