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춘천에 온 지 7년 되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갔다거나 감회가 깊다거나 하지는 않고 딱 그만큼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시 서울로 가고 싶은 시기도 있었지만 나는 생각에 비해 행동은 현실적이고 계산도 빠른 편이어서.
다만... 나는 현실적이고 계산이 빠르고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이지만... 마음속에 절박함이나 간절함을 잘 감춘 이들과 어느 날 불쑥 마주치고 또 그런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서울은 그런 도시였나 그렇지도 않지.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잘 설명해도 오해만 생길 뿐이고 잘 설명할 자신도 없다.
시부모님과 가까이 살면서 나처럼 이득인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면 더더욱 서울로 갈 이유가 없는데.
이사 오고 이틀 뒤였나. 어머니가 현관 키로 문을 열고 들어오신 사건으로 그날 밤새도록 철운하고 싸운 일은 지금 와서 돌아보면 조금 멋쩍어진다. 몇 년 뒤에 우리가 엄마네 비밀번호도 마음대로 누르고 들어가 내 집처럼 안마 의자에 누웠다가 냉장고도 털고 쌀도 가져오고 그런다는 미래를 알고나 싸우길...
그때 내 하소연에, 아마 모르셔서, 아파트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셨을 거예요라고 최고의 조언을 해 준 엣눈님이 생각나는 밤... (그리고 정말 그게 맞았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과 전쟁> 식으로 해결하지 않는 사람을 꼭 곁에 두어야 한다.
부모님과 가까이 살게 된 후로 우리의 삶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아침부터 헤어롤 말고 있는 엄마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빠 친구들 모임인데 아빠는 안 가고 나만 가는 거야라고 하셔서, 아빠 모임인데 왜 엄마만 가? 그러자, 이제 아빠 친구들 다 죽고 부인들만 남았지, 하고 엄마가 막 웃으면서 말했다고, 집에 와서 내게 이 얘기 하는 철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몇 초 뒤 서로 빵 터지는 일 같은.
두 분이 죽음을 둘러싼 펜스를 아무렇지 않게 뚫어 버리는 말을 해버릴 때, 처음에는 듣는 순간 심장이 툭 하고 떨어졌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도 마치 거기를 통과한 사람인 것처럼 장단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