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17 06 14

 

 

 

할아버지는 아주 정확하고 무섭게 말씀 하시던 할머니와 다르게 감정이 잘 안 느껴지는 분이었다.

항상 나무를 깎고 그걸로 기와집이나 거북선 같은 모형을 만들고 계셨는데, 나는 어릴 때 그게 할아버지 직업인 줄 알았다. 그저 취미로 하시는 거였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모든 것이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되나? 할머닌 백화점 청소일 하시는데? 할아버진 취미로 나무를 깎고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나는 할아버지가 만드신 것을 보는 게 여전히 재밌고 좋았다. 특히 그 기와집 모형은 정말 세밀하게 하나하나 모양이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서서 내려다보면 마당이 한눈에 보이고 거기에는 절구도 있고 개도 있고, 쪼그려 앉아 방 안을 들여다보면 경상 앞에 앉아있는 사람 모형이 있고 구석에는 조명도 있어서 플러그를 꽂으면 그 방에 불이 들어왔다.

내가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보았던 그 기와집...

 

 

재작년에는 십이간지를 깎아 마당에 차례로 세워두셨는데, 이제 예전처럼 정교하지 않고 모양이 점점 단순해져서 오히려 예술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주 장례 치르고 돌아와 그중 '닭'을 갖고 싶어서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지난달에 이미 할아버지가 손수 다 태우셨다고 엄마가 말해주었다. 기와집도 거북선도 전부 다.

 

 

병원에서 남긴 마지막 유언마저도 자신의 양손을 펼쳐서 '여덟', 그리고 '엄지 척'을 만든 것이 전부였다고.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아무리 궁리해 봐도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들 넷, 며느리 넷, 짱! 그냥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고 작은 아빠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