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2 01 23

 

엄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어릴 때 구리시장 노상에서 갈색 작은 대야에 담긴 도라지 껍질을 긁어내고 계신 노인을 보고 내가 불쌍하시다고 하니까 뭐가 불쌍하냐 도라지 팔고 계시는 건데,라고 엄마가 말했다. 자라면서 그 말이 내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것도 엄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잊지 않고 있어

 

 

아 이건 기억할까,

엄마랑 동네 어디를 걷다가 매일 지나는 놀이터 의자에 잠깐 앉았는데, 앉은 시선으로 정면에 막 짓고 있는 낮은 건물이 있고, 골조 사이로 인부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고, 엄마가 저기 아빠다,라고 했다.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날이었다. 이렇구나, 생각하면서 엄마랑 나란히 앉아 있다가 인사나 아는 척 없이 다시 일어나 집으로 온 것뿐인데 나는 그날 그 잠깐을 어느 영화 한 장면처럼 오래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 아니라서, 뭐가 불쌍하냐는 엄마의 말에 어떤 감정이 있던 건지, 왜 하필 아빠가 일하고 있는 바로 그 건물 앞 놀이터 의자에 엄마와 나란히 앉게 된 걸까 같은 생각은 다 큰 성인이 돼서야 하게 되었다.

그때 엄마는 그 노인의 노동이 특별해 보이지 않고 평범해 보였을 것이다. 그날 엄마가 저기 아빠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나는 어제처럼 그곳을 지나며 위험하겠다 시끄럽다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아빠의 노동 현장을, 그 현장에 있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날 아마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머리로는 아직, 몸으로 먼저. 몸이 먼저 알고 성인이 된 후에 머리로.

노동은 공평하고 나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