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4 01 03

 

중학교 때 만나 일 이년 동안 친하게 지내다 자연스럽게 소원해진, 그러나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만나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와 책상에 있는 내 씨디와 테이프를 집어 앞뒤로 빠르게 훑고는 이런 걸 들어? 하면서 손을 놓치거나 미끄러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책상 위에 툭 던지듯이 놓는 걸 본 뒤로 걔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다가, 엄마가 사과였나?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너 집에 가" 하고 말했다. 그 애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내게 너는 이런 책들을 좀 읽어 봐야 한다고 말해준 친구도 있었다. 그 애는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 말을 하기도 했다. 옆에서 늘 조언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라고.

그러나 나는 속 좁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자의식에 빠진 소설 따위 절대 읽지 않을 거고 그림만으로 더 많은 걸 보여 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속으로만.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그림을 더 잘 그려, 이런 생각하면서.

 

 

그때의 재수 없던 내가... 지금의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 애 말을 꼬아 듣지 않고 그저 책을 추천했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한 번 읽어 보고 재밌더라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랬더라면... 지금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거나... 더... 좋아져 있을...까...?

 

 


 

국민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짝으로 만난 또 다른 친구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될 때까지 쭉 가까운 사이였고 우리는 늙어서도 곁에 있을 영원한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너무 많은 일이 마치 토해내듯 쏟아진다.

쉬는 시간에 미처 못 끝낸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낙서로 주고받다 웃음 터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선생님이 꿀밤을 때리면 친구는 바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까만 피부에 빨갛게 달아오른 강렬한 색감 때문인지 아직도 그 얼굴이 선명한 사진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서로의 집을 매일 데려다주고 집 앞에 와서는 다시 또 반대로 향하면서 우리 이러다 영영 못 들어가겠다 이번엔 중간에서 꼭 헤어지자, 그런데 중간에서 인사하기 아쉬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못다 한 얘길 마저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어느 날 어디를 가자고 해서 따라간 곳은 작은 마당이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우리 또래와 어른이 열 명쯤 섞여 있었는데 한 명 한 명 모두가 나를 환하게 반겨 주었다. 작은방에 다 같이 둘러앉아서 귤을 먹었나 과자를 먹었나 뭔가를 먹었고 하얀 전지에 매직으로 커다랗게 쓴 노래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르며 손뼉을 쳤다. 그 뒤로 한두 번 더 갔나... 두세 번이었나...

 

시간이 조금 지나 그 집에 갔던 일을 잊어갈 무렵, 친구가 서울에 볼 일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이번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로 데려갔다. 그제야 아, 이것은 아니다... 아주 잘못된 곳에 서 있다는 느낌이 왔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여기는 사이비 같은 그런 데가 아니야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더 겁이 났다.

 

그동안 내가 본 것들을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믿고 의지하는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풍경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너는 내 친구고 아줌마는 너의 엄마고 네가 전에 데려갔던 곳은 그냥 우리 동네 어느 집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커다란 구조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너무나 다른 느낌이어서...

 

그 뒤로 우리가 함께 쓰던 대화장은 다음 장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고, 반 아이들이 내 다이어리를 돌려보는 걸 지켜보던 친구가, 넌 다이어리 꾸밀 시간은 있고 우리 대화장 쓸 시간은 없어? 하며 서운한 얼굴로 말했을 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만... 너는 나 이상한 데로 데려갔잖아... 그게 나쁘지 대화장 안 쓴 게 나쁘냐.

 

 

이제는 그 애 기억 속에 나는 완전히 잊힌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결말이라는 걸 일기를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