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08

지난달 홍천에서, 호박 하우스 일을 엄마가 잘 안 돕는다며 (완전히 진심도 아니면서) 괜히 투덜거리는 아빠에게 오빠가 이렇게 말했다. “홍천에 오기로 한 건 아버지 결정이었으니까 농사는 아버지가 책임지는 게 맞는 거죠.” 와. 오빠 T야? 모두 웃고 넘어간 이야기를 그날 새벽 혼자서 방에 누워 계속 곱씹었다.
사실… 아빠가 귀촌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였는데… 당시 엄마와 오빠가 출근한 낮 시간 동안 집에 남은 아빠와 나는 서로의 기척을 의식하며 보냈고, 어떤 날엔 각자 용기를 내어 점심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아빠는 밖으로 나가 끼니를 해결하고 나는 거의 먹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가 이 집에서 숨 쉴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입을 닫고 방문을 잠가 모두를 숨 막히게 했는데, 하루는 엄마가 내가 없는 동안 방에 들어와 내가 아끼던 스누피 노트의 첫 페이지에 편지를 써서 펼쳐 두었다. 제발 이렇게라도 얘기를 해보자고. 그러나 나는 그것조차 거부하였다. 정말이지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내 비명 소리가 아빠에게 들리지 않았을 리 없고, 어쩌면 아빠도 똑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겠지. 그러니 서로를 위해 그런 결심을 한 거겠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에 아무런 책임을 못 느끼고 오랜 시간 나만을 보살피며 지내오다 이렇게 내가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 모두에게 너무나 미안해지고… 다시 돌아가 그 노트의 다음 장을 넘길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그날 새벽 내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네 시 반에 벌써 밭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아빠 엄마의 기척을 들었다. 한 시간 뒤에 엄마가 다시 들어와 솥에 밥을 안치고 다시 밭으로 나가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밥이 거의 될 때쯤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미역국을 끓였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일은 어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