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3 11 26

 

주중에 구리시 다녀왔다. 구리는 이제 아무리 둘러봐도 기억이 깨어나지 않을 정도로 낯선 도시가 되었다. 맵을 보며 건물을 찾는 동안 긴장해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도착하고 제일 먼저 마주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단번에 미옥아! 하고 불러 주어서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 안 되는 장소임에도 너무 반가워서, 그 순서로 먼저 울어 버리고 뒤에 가서야 슬픔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리역 근처에서 다시 버스 타고 퇴계원으로 갔다. 퇴계원은 엄마가 다닌 가방 공장이 있던 곳인데 나는 이 동네를 처음 와 본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가던 곳은 언제나 구리를 기준으로 서쪽이었다는 것도.

 

 

...그 시절 나를 기준으로 경춘선은 지금 거꾸로 달리는 중이다.

아까 본 구리역 주변의 빼곡한 현수막들에 뿜어지던 서울시로 편입되길 염원하는 광기가 어린 시절 내 욕망과 너무 닮았고... 3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20년 전 나는... 10년 전 나는... 그런 생각 하면서 텀이 아주 긴 역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니 어느새 도착했다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 역에서 모두 내린다. 어떤 날은 두세 명이 전부일 때도 있다.

 

 

 

 

주말에는 사촌 동생 결혼식을 위해 다시 경춘선을 탔다.

청춘호 타지 않고 지하철로 다니는 이유는... 시작은 빈대였지만 겸사겸사 돈도 절약되기 때문에. 세 시간 동안 한 번도 앉지 않았다. 허리를 잃고 빈대를 피하면서 교통비를 3분의 1로 줄였다.

 

 

도착하자 사촌 동생의 동생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누나! 하면서 인사했다.

우리들은 어릴 때 나름 가까웠는데, 이제 명절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얼굴에 귀여움이 남아 있고, 내가 귀여워하던 마음도 변하지 않아서, 그냥 여전히 정말 귀여웠다. 둘 다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송파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학도 근처에서 다닌 사촌 동생은 과연 친구가 많았다.

나도 서울이나 구리에 있는 식장에서 결혼했으면 친구들이 많이 왔을까? 멀어서 못 온 친구가 얼마나 되나 세어 보다 말았다... 그냥 원래 없구나... 오직 나를 위해 와 준 한 명 한 명이 새삼 떠오르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날을 흐릿하게 기억하는 또 다른 사촌 동생이, 언니 결혼식은 뭔가 성당 같은 분위기였고 국수를 먹은 것이 레어했다고, 지금은 철거된 시골 예식장을 아름답게 추억해 주어서 그것도 고마웠고. 

 

 

6년 만에 만난 부산 작은 엄마가 머리를 브릿지 한 거냐고 하셔서, 아뇨 흰머리가 된 거라고 했는데 저쪽에서 작은 아빠가 걸어오시면서, 아니 미옥이는 왜 이렇게 늙지를 않냐고, 나를 아직 보지 않으면서 말하셨고, 예에??? 그럴 리가요 저 보세요 했다.

 

 

친척과 얘기 나누던 아빠가, 다른 집 딸들은 차도 새로 뽑아주고 한다던데 우리 딸은 그런 거 일절 없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괴롭게 하던 아빠식 유머. 진심이 아니면서 괜히 하는 저런 농담을 너무나 오랜만에 들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분명 상처받고 입 꾹 닫았을 테지만 이제는 전혀. 왜냐하면 사실이고 맞는 말이니까... 내게는 그럴 돈이 없고 그러니 차를 사 드리는 일은 일절 일어나지 않는다.

 

 

식이 끝나고 바로 구리시 모임에 간다고 하셔서 얼른, 그럼 나도 구리까지 태워 달라고 했다.

그러자 또다시, 야아 그럼 구리까지 택시비 얼마냐? 반만 받지 뭐 라고 하셔서, 저 돈 하나도 없는데 그럼 세우지 말고 쭉 가세요 제가 알아서 차에서 뛰어내릴게요 하고 받아쳤다.

경춘선 바로 탈 수 있는 퇴계원까지 가달라고는 차마 못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