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08

 

 

요즘 들어 레오를 향한 내 마음이 계속 커지는 걸 나도 느끼고 있다.

레오가 만지랑 빌리한테 까불다가 결국 아무하고도 놀지 못하고 울면서 내게 오면, 왜 너는 귀여움 받는 법을 모르니~ 하면서 나는 더 꼭 안아 주게 되고... 그럴 때 나를 올려다보는 저 작은 소두의 눈동자가 너무너무... 정말이지 너무나 내가 원하던 사랑의 형태라서... (아. 왜 또 눈물이 나지)

그날 평소보다 유독 더 레오가 만지를 도발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레오 편에 서는 걸 숨기지 못한 것이다.

 

동전 크기 정도로 발갛게 벗겨진 배를 바라보다가...

새삼 만지는 정말 나를 잘 아는구나...

 

 

 

 

 

 

커다란 소파를 집에 들이거나 시끄러운 공사 소음에 괴로워하는 것, 손님이 왔다 간 하루, 목동에서 춘천으로의 대이동, 외출하고 밤늦게 돌아온 우리를 맞이하는 일, 병원 진료 같은 지금까지의 이런 일들은 어쨌거나 만지와 나와 철운이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었고 그런 식의 변화는 만지의 세계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그저 해프닝 같은 소동일 뿐이었겠지. 그렇지만 레오를 보는 내 눈에 비친 사랑의 눈빛은... 어땠을까. 만지라면 모를 수가 없는데. 그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동안 무언가 붙들고 있기 위해 오버 그루밍을 하게 된 건지도...

 

 

새벽반 (그루밍 감시) 보초 서며 멍하게 이런 생각 하다가... 입에서 피 맛이 나서 정신이 들었다. 아. 멈춰야지.. 아는데 자꾸 손이 가...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입술을 뜯었는데, 방학 때 만난 사촌 언니가 어머 너 입술 거기가 이렇게 삐죽 나와 있다며 놀라고, 학교에서도 친구에게 너 옆에서 보면 입술이 이상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외모에 조금씩 신경이 쓰인 것인지 자연스럽게 입술 대신 팔에 난 작은 점 하나로 손이 옮겨 가기 시작했다.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기면 딱지를 또 만지고 뜯어서 더 큰 딱지를 만들고... 어느새 점이었던 것이 검은콩만 하게 부풀어서 이제 나조차 그걸 만지기 싫을 정도로 흉해졌다. 엄마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제거 수술을 해주었다.

그게 사라지자 다시 입술을 뜯게 되고... 그러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자 이번에는 겨드랑이에 난 작은 점으로 손이 또 알아서 옮겨 갔다. 서른이 될 때까지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있는 걸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점이 쌀알보다 크게 부풀어지고 나서야 손을 떼게 됐다. 그리고 다시 입술로... 역시 어떻게든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가

 

 

이쯤에서.

도대체 어릴 때 나는 뭐가 그리 불안해서 이런 버릇이 생겼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불안을 느낀 첫 번째 기억은 꿈속에서 항상 엄마가 집을 떠나려고 했던 것이다.

커다란 프라이팬에 뭐를 잔뜩 볶고 있는 엄마에게 뭐 하냐고 물었더니, 이걸 먹고 있으라고 했고, 나는 꿈속에서도 '가지 마'라고 속으로 말했다. 또 다른 날은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가려고 아무리 해도 그쪽으로 움직여지지 않아 제자리를 달리며 엉엉 울었다. 그런 꿈을 거의 매일 꾸던 어린 시절이 조금 가엾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단지 그런 정서를 타고난 아이였을 뿐이고 엄마는 집을 떠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지난달 홍천에서 언니가 잠깐 마당에 나가 있는 동안 재인하고 둘이 마루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재인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엄마 보고 싶어... 하면서 너무나 슬프게 구슬 같은 눈물을 툭 떨구고 울었다. '아니 재인아?! 엄마 저기 있잖아?! 목소리도 들리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나도 같이 슬퍼져서, 아아 엄마 보고 싶구나아 재인이가, 하고 꼭 안아 주었다.

엄마 보러 갈까?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언니에게 이걸 말하면서, 뭔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기 모습에 취한 것 같다고 했더니 언니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헤어질 때 웃으면서 인사 잘하고는 돌아서서 바로 엄마 보고 싶다고 운다고.

 

 

그날 우는 재인이를 안고 있으면서, 우리는 정말 많이 닮았지만 너는 나 같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것 같아 너무 다행이고 좋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재인이가 울고 싶을 때 얼마든지 울 수 있도록 안아주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어서 정말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