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2 07 09

 

서랍 속에 늘 품고 있는 편지를 꺼냈다.

이유 없이 의기소침해지거나 흔들리고 있다고 느낄 때면 이 편지를 읽고 싶어진다.

 

 

미래에 뭐가 되어 있을지 상상하는 일이 삶의 전부이던 시절에 만난 국어 선생님.

백일장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겠다고 하신 날 밤에, 나는 이러다 작가가 되려나 봐... 꿈꾸면서 잠들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내 기억은 이런 식이다. 그런 것들, 그날 들은 이야기와 내 기분과 감정 상태 같은 것들을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낸 글은... 뭘 썼더라? 뭔가 아주 골똘히 만들어낸 이야기였을 텐데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에게 주는 장려상을 받았다고 실망할 이유가 처음부터 없던 건데. 뭐가 그렇게 무너지는 것처럼 속상했을까.

최우수상 받은 친구를 질투하는 마음은 숨기고, 이렇게 좋은 것 덜 좋은 것으로 상을 나누는 건 나쁘다고, 다시는 백일장이든 뭐든 나가지 않겠다며 억울함을 잔뜩 담아 편지를 보냈다.

학기 중엔 몰랐던 내 상태를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알게 된 선생님은 얼마나 웃으며 이 답장을 쓰셨을지.

 

 

“미옥이는 OO이와 글솜씨를 서로 비교하면 안 돼요. 서로의 글 쓰는 스타일과 소재와 주제를 찾는 눈이 다르잖아. 세계가 다르다 그러지. 어쨌든 좋은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었구나.”

 

 

내게는 이 편지가 그 시절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이날 기억도 나요.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밖으로 나가자고 하셨죠. 운동장 모래바닥에 원으로 둘러앉아서, 교과서도 없이, 음료를 마신 병에 모래를 채우고 거기에 나무 막대기를 꽂고 그냥 그러고 세상에서 가장 할 일 없는 중딩처럼 모여 있었어요. 기억하시나요.

선생님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재능이 없다는 걸 종종 깨닫고 무너져요. 그때마다 이렇게 혼자 쓰는 일기가 늘 저를 일으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