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2 07 14

 

 

 

고사리 잎을 만지면서, 어떻게 이런 은빛이 돌 수 있냐고 환상적이지 않냐고 했더니, 아니 내 눈에는 먼지 뿌옇게 앉은 것처럼 보여 물 빠진 색 같기도 하고,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나는 이 은빛색이 너무 신비로워서 그 앞에 한참 앉아 있었다.


철운이 좋아하는 스프레이는 내겐 너무 괴로운 향이라, 무슨 공중 화장실에 놓인 방향제 찌든 냄새 같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거실 화장실에 몇 년째 놓여 있다. 그리고 작년에 산 향수도. 나는 꼭 암내처럼 들어오는 그 향 때문에, 우엑 이걸 왜 돈을 주고 사는 거야? 코를 틀어막으면서도, 지난겨울 생일에 뭘 해줄까 고민하다 다 쓴 빈 병을 보고는 그걸 주문해 선물했다.


내가 헤어 식초를 처음 썼을 때 철운은 특이한 잔향이 꺼려진다며 인상을 쓰고 싫어했는데, 그때 내 후각이 무척 황당해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왜? 너무 아름다운 향기 아니야? 숲에서 귀한 식물 만난 거 같은 그런 향이지 않나?!
청량하고 짜릿하면서도 기분 좋은 향을 읽어내던 철운의 후각도 내가 그걸 암내와 공중화장실 방향제로 비유했을 때 그런 같은 기분이었겠다고.


곱창을 좋아하는 철운이 입안 가득 터지는 고소함을 아무리 얘기해도, 그 앞에 앉아 감자 익기만 기다리는 내게는 그것이 맛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기름으로 만든 질긴 고무줄을 끝없이 씹는 일밖에 안 된다.

 

 

이런 감각들 말이야.

인간으로 사는 데 너무나 중요한 그런 감각들이 이렇게나 극과 극으로 다른데, 우리는 어떻게 10년이 넘도록 같이 살지?

 

 

 

 

국민학교 3학년 통지표 가정통신란에 선생님은 이렇게 쓰셨다.

“즐거운 생활의 이해면이 다소 부족합니다.”

물론 교과목을 말한 거였지만 선생님은 학생의 미래까지 내다보셨다.

 

정말 그런 것 같거든... 사람들이 내게 웃음이 헤프고 어떤 말을 해도 다 웃는다고 할 때면, 물론 즐거웠어요 하지만 조금 노력을 했다고 말하지 못한 죄책감이 들고는 한다.

 

그런데 철운과 주고받는 것들이 반응이 되어 나올 때 내가 노력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웃기다는 생각을 거칠 틈도 없이, 속마음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온몸이 해제되어 팡! 하고 터질 때의 내 모습을 본 사람은 철운밖에 없다. 분노로 바꾸어도 그렇고. 외로움도. 불안함도. 걱정. 질투. 가여움. 부끄러움까지... 생겨나는 모든 감정을 어떤 것도 거치지 않고 이렇게 정직하게 사용해 본 타인은 처음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영원히 유일할 수도 있는 이 타인과 나 사이를 건너는 감각에도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상태를 내가 원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