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2022 05 22

 

춘천에 온 뒤로 더 가만히 앉아 있어 그런가

점점 더 어떤... 여러 삶의 방식이나 선택들에 나를 완전히(나로서 말고 온전히 그 삶 속으로, 출생부터) 대입해 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래서 어떤 때는 더 울게 되고 어떤 때는 더 냉정해지는 달라진 나를 보게 된다.

 

 

나로서 말고 온전히 그 삶 속으로 들어가 본 첫 인물은 아빠.

들은 것과 내가 보았던 짧은 장면들 만으로 따라가 본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출생.

밑으로 남자 형제 셋, 위로는 누나 한 명.

생활이 어려워 동생들은 부모님과, 누나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다. 누나는 성인이 막 되었을 때 병으로 죽었다.

나는 미장을 배워 공사장에서 일했고 일찍 결혼을 했고 젊은 나이에 아빠도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나의 식구와 이곳저곳 단칸방을 옮겨 다녔다. 서울과 가장 근접한 구리시 교문동의 딸기원이라는 산동네 제일 꼭대기에 살았을 때는 생활비가 부족해 아내의 결혼반지를 팔기도 했다.

일곱 살 아들은 밖에서 놀다 신발이 더러워지면 대문을 넘지 못하고 밖에 가만 서있을 정도로 집주인 눈치를 보았고, 아내가 나가서 아이를 들어 안아 마당을 통과하여 데려오고는 했다.

그래도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면 우리는 마당에 나와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놀았다. 크리스마스날 밤에 아내는 땅콩강정 두 봉지를 쟁반에 담아서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 주며 산타가 주고 갔다고 말했다.

한 칸짜리 방에는 전축이 있었고, 아내가 마이크를 연결해 시골쥐와 서울쥐 동화를 공테이프에 녹음했는데, 그 테이프 뒷면에는 다섯 살 딸이 부른, 건아들의 '금연' 노래도 있었다. '건강에도 안 좋은 걸 왜 자꾸 피우시나 아빠아~'라고 개사를 한.

부모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 다시 자리를 잡았으나 어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악화되자 내게 제안을 했다.

사글셋방을 벗어나 알콜중독 할아버지를 모시는 대가로 나에게 집이 생겼다.

 

 

 

여기까지.

 

우리 식구는 두 개의 방 사이에 마루가 있고 부엌과 화장실은 신발을 신고 나가는 곳인 그 집에서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조금씩 구조를 고쳐 가며, 마루를 커튼으로 분리해 세 개의 방으로 만들어 살았다.

다시 상상해 봄.

같은 시대, 같은 한국에서, 전혀 다른 배경으로 태어나 자랐을, 예를 들어 거실에는 소파가 있고 춥지 않은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독립된 방이 여러 개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나온, 이제 막 노년기에 접어든 어떤 남자의 삶과 그 가족들을.

 

 

“해방일지 가족들 충격이었어. 저런 삶이 있을 줄이야. 지치고 힘드니까 서로 밥 먹는데 아무 말도 안 해.”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이 말이 계속 생각난다. 저런 삶이 충격이라니... 내게는 그 말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늘은 또 염씨네 고구마밭과 나란히 붙어 있는 주말농장의 어느 가족들 대화에서 많이 웃었고.

“아이고. 농사 오래 지었다고 다 잘 짓는 거 아니야. 유튜브에서 배워야지.”

 

작가가 이 장면을 어떤 마음과 눈으로 쓴 것인지 알 것 같아 짓궂고 재밌었다. 평범한 상상과 모르는 현실들이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