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27
매일 집에서 그림 그리고 밥하고 먹고 자고 그러고만 있는데도 시간이 이렇게 순식간에 흐른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재인이 다녀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맙소사...
엄마 생일이라 홍천에 가는 거였는데 그전까지 일이 안 끝날 것 같아서 못 가겠다고 연락했더니, 그럼 춘천에서 다 같이 점심 먹는 건 어떠냐고 오빠가 물었고, 나는 단번에 그건 아빠가 싫어할걸? 하고 내 멋대로 말해버렸다. 홍천에 나는 꼭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한 게 첫 번째 실수였고... 그리고 아빠의 속마음을 내가 잘 안다면서 모두의 입장을 무시하고 그런 식으로 오빠에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대체 우리 가족은 왜 이런 거야! 같은 생각이 내 삶을 지배하던 시기로부터 이제는 완전히 벗어났다고 느껴지는 이 거리감이 너무나 편안하고 그래서 점점 더 물러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마치 모두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나도 이제 성장했구나 대견해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네... 정말 어른이 된 건 오빠밖에 없다. 오빠는 재인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갈수록 우리 가족은 왜 이런 거야? 하는 마음도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는 거겠지.
나는... 집 근처 적당한 식당 알아보는 일에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어른이야.
닭갈비나 막국수는 좀 그렇고 아버님 팔순 때 식사했던 고깃집이 괜찮은데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고민이 되었다. 나 때문에 모두 춘천으로 와 주는데 내가 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데 가격이... 혹시 오빠가 반 준다고 하면 받아도 되나... 엄마 생일이니까 통 크게 아빠가 쏘는 경우의 수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어른이야...
고기 먹고 커피 마시고 엄마 아빠는 호박에 비닐을 씌워야 해서 서둘러 가셨다. 언니와 오빠는 아까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무심코 재인에게 여기가 레고랜드 있는 데라고 말한 바람에, 근데 아빠! 저번에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어? 언제 갈 건데?? 백 년 뒤에?? 하고 핀잔을 들었다며, 재인이 저쪽 방 장난감에 정신 팔린 동안 거실에서 조용히 티켓을 검색해 보는데, 아 가격이... 게다가 세 시간 뒤에 폐장이네... 난감해하다가, 철운이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제시하자 서둘러 거기로 출발했다.
조카한테 레고랜드 티켓도 못 끊어주는 고모가 무슨 어른이야... 돈 번다고 같이 놀지도 못하면서 용돈도 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무거워서 타이레놀 꺼내 먹고 있는데 오빠에게 톡이 왔다. 고깃집 얼마 나왔어? 계좌 불러줘.
오빠는 진짜 어른이고... 그렇지 못한 나는...